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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3년 국제현상설계 더 픽클럽 홍콩(The Peak Club, Hong Kong)에 당선작가로 발표되면서 부터이다.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서 태어난 그는 베이루트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수학을, 영국 런던의 AA 스쿨에서 건축을 공부했으며 이후 런던에 건축사무소를 개설하고 불과 33살의 나이에 국제무대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가 제출한 작품은 홍콩 빅토리아산 정상에 지어지는 건물이라는 것으로도 유명했지만 그것보다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은 설계를 통해 보여준 그의 건축관 때문이었다. 날아갈 듯한 선의 조합, 유동적인 공간구성, 대담한 조형감각, 연속적인 건물의 시퀀스(sequence)가 연출하는 도시적 세련미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자하 하디드의 건축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근대건축이 추구했던 단순성과 순수성의 허구가 지적되면서 시작된 새로운 형태의 건축 모색 과정과 그 근간을 같이 한다. 포스트모던(post-modern)건축이 근대 건축에서 간과한 새로운 미학을 시도하고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 차용한 건축어휘를 재해석하여 대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Zaha Hadid는 보다 순수한 형태적 분석에 기초한 접근을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실험적 건축을 표방하는 아키그램 멤버들이 주축이 된 런던 AA 스쿨에서 수학한 그의 건축은 폴 끌레(Paul Klee), 모홀리 나기(Moholy-N a g y ) , 말레비치( Kazim i r Malevich) 그리고 엘 리지스키(El Lissitzky)등이 시도한 형태 요소들의 움직임(movement)과 역학분석(kinetic)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특히 물체(object)의 자유로운 구성과 요소들이 운동성을 갖고 독립적 영역을 확보하는 공간실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자하 하디드의 작품처럼 추상적인 건물을 세운다는 것은 모더니즘 전통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결국 그의 현상 설계안은 지어지지 않았고 그는 한동안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로 남게 되지만 1991년 독일 라인지방에 비트라소방서(Vitra Fire Station)의 설계를 맡게 되면서 다시금 건축가로서 이름을 날리기에 이른다.

비트라소방서는 기존 건축물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 건물로서 건축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해도 과언이아니다. 건축요소들이 분해, 해체되고 그 해체된 요소들이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부유하는 듯한 구성은 기존 건축에선 익히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기울어진 벽체, 예각과 둔각이 혼합된 면의 조합, 솔리드와 보이드가 교차되는 공간의 예외적 구성 등이 소방서라는 기능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홍콩의 픽클럽(Peak Club)에서 보여줬던 요소들을 선형(linear)으로 배열하고 조합하여 이루어진 이 소방서는 합리적 공간배치와 형태도출이라는 근대건축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 것이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근대건축의 모토가 새롭게 도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후 자하 하디드는 1988년 미국 뉴욕의 근대미술관(MOMA)에서 마크 위글리와 필립 존슨이 기획한 “해체주의 건축” 전시회에 초대된다. 당시 함께 초대된 작가는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 프랭크 게리(Frank Gehry), 쿱 힘멜블라우(Coop Himmelblau), 렘 쿨하스(Rem Koolhaas), 다니엘 리벤스킨트(Daniel Libeskind), 베르나르 츄미(Bernard schumi) 등으로, 이 전시는 해체주의 건축을 구체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데, 자하 하디드가 해체주의 건축가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도 이 전시를 통해서라고 할 수 있다.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자본주의와 대중소비문화의 발달은 자하 하디드가 건축계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양분을 제공하게 된다. 스펙타클을 요구하는 시대적 상황이 그에게 대규모 프로젝트의 현상설계에서 당선되어 세계적인 건축가로 위상을 획득하게 하는 발판을 제공한 것이다.

자하 하디드는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한 새로운 건축을 시도하는데 요소의 해체(deconstructive)와 구축적(constructive) 구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분해된 것들을 단순한 윤곽선으로 통합하기 시작했다. 마치 인상파화가의 그림에서 대상을 묘사하는 여러 개의 윤곽선이 보는 과정에서 점차 집결되며 시각의 영역에 포착되듯이 형태를 부풀리며 여러 겹의 분해된 선들을 단순한 선형으로 합체하는 형식을 추구한 것이다.

부풀린 형태속에 감추어진 다양한 면들과 공간은 예측하기 힘든 깊이감을 제공하고 부유하는 듯한 공간 속에서 부상하고 때론 소멸한다. 여전히 기능적 형태의 윤곽을 따르지 않을 뿐아니라 공간을 담는 선이 불분명하고 원근법이나 기능적 배열을 고집하지 않는, 새로운 건축의 리얼리티를 창조하고 있다. 어찌 보면 기존의 것을 해체하지 않고 미리 구성하여 보여준다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될 수도 있다.

일련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형태의 연속성과 유사성은 그가 대상 건축물의 형태를 해체 분해한 것이라기보다는 미리 구성한 것이라는 해석에 정당한 근거를 제공한다. 비트라 소방서 같은 소규모 건물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표면으로 부상하는 질서”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하 하디드는 디자인 영역을 건축에 제한하지 않고 스포츠용품, 가구, 패션 등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휘몰아치는 듯 움직이는 스트랩(strap)으로 디자인된 운동화와 구두, 헨리 무어의 조각을 보는 듯한 주방가구, 여러 패치로 구성되는 단순한 여성의류 등, 여전히 실용성 측면에서는 의문을 갖게 하지만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제품들을 디자인해 선보이고 있다. 전복적인 시각을 제공하며 기존제품들이 보유한 균형감각에 새로운 인식 틀을 제공한다고 인정받을 만큼 독특한 그의 디자인은 소장품으로도 유명하다.

이제 우리도 서울에서 자하 하디드의 건축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알려진 복합 문화공간의 설계자로 서울시에서 2007년 실시한 동대문 운동장 공원화사업 지명 설계경기에서 1등으로 자하 하디드의 설계가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번의 설계변경을 통하여 현재 한창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공원의 초록색과 건물 마감재에 투영된 푸른색이 겹쳐지며 만들어내는 유동적 형태가 지각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요동치는 인상을 줄 것이라 예상되며, 비트라 소방서처럼 한 눈에 들어오는 규모는 아니지만 복잡한 동대문 일대를 단숨에 통합하는 도시경관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디테일보다는 관입되는 공간의 시퀀스에서 엮어지는 새로
운 도시 공간, 사물이 광경이 되고 광경이 사물이 되는, 그리하여 주체와 타자의 보는 것과 보여 지는 것이 전복되는 도심의 거울과 같은 건물이 될 것이 틀림없다.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조각품과도 같은 유연한 선과 뚫어진 구멍을 통한 공간교감(spatial interaction)이 장대한 스케일로 우리의 감성(sensuality)을 유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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