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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나라 티벳으로

진료실을 훌쩍 떠나 바깥세상을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일은 매번 즐겁다. 지난 추석 연휴 때도 그렇게 티벳으로 떠났다.

티벳을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 8년 전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던 때다. 당시 트레킹을 위해 카트만두와 포카라에서 머물렀는데 거기서 히말라야를 넘어와 모여살고 있던 티벳인들과 티벳 사원을 처음 만났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성지(聖地), 라싸에 나도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06년에 칭짱 열차가 개통되었을 때는 기차표 구하기가 어려웠고, 2008년에는 티벳 독립시위사태로 여행이 제한되어 못갔었다. 이번에는 드디어 북경서 출발하는 칭짱 열차를 타게 되었다.

 

겸손해지게 하는 신의 땅, 라싸

해발 3700m 고산지대에 위치한 라싸까지 가려면 북경서 기차로 이틀을 내리 달려야하는데, 라싸에 가까워질수록 고산증상이 심해진다. 신의 땅을 쉽게 볼 수는 없는 모양이다.

티벳어로 ‘성지(聖地)’를 뜻하는 ‘라싸’는 1300년 역사를 지닌 고도답게 시내 어디에서라도 볼 수 있는 포탈라궁을 중심으로 순례자들과 사원이 가득한 곳이었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구름과 푸른 하늘, 높은 산에 둘러 싸여 있는 라싸는 선택받은 자만이 볼 수 있는 그런 땅이었다.

 

집착을 벗어버리게 하는 조캉사원의 새벽

티벳 최초의 통일 왕조를 이훈 송첸 캄포 왕이 왕비로 맞을 문성 공주를 위해 지었다는 포탈라궁은 금빛 지붕이 새파랑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있었는데, 기대했던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라싸에서 가장 마음을 빼앗겼던 곳은 티벳인들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던, 관음보살을 모셔둔 조캉사원. 티벳인들이 가장 신성시한다는 이 사원은 특히 새벽풍경이 이색적이다. 사원 외곽을 한 바퀴 크게 도는 바코르는 새벽부터 기도드리러 온 티벳 사람들의 행렬로 가득했다.

새벽시간, 순례자와 기도자 들에 섞여 바코르를 함께 돌아보았다. 생활과 종교가 일치된 그들의 참 모습에서 집착을 벗어버리려는 깊은 신심을 함께 느껴보고 싶었다. 

   
 
하늘 호수를 보다. 남쵸 호수(Namtso Lake)

해발 4718미터에 위치해 있지만 과거에는 바다였다고 하는 남쵸 호수를 하루 동안 다녀왔다. 라싸를 조금만 벗어나도 황량한 국도가 끝없이 뻗어있다.

국도 옆으로는 한번 또 한번 이마를 땅에 붙이며 오체 투지하는 순례자들이 간간이 보인다. 차로 4시간을 달려 남쵸 호수 근처까지 가면 5170m의 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늘 호수도 인간들에게 온전히 그냥 모습을 내어주지는 않을 모양이었던 것 같다. 7000m 이상의 고산들이 호수 주변을 감싸 안고 하얀 구름이 호수 가까이에 붙어 있는 이곳, 바람소리만 들리는 이곳에서 몸과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

 

파격의 발레, 신데렐라로 여행을 마무리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북경에서 하루 묵는 일정으로 정했다. 북경의 새로운 명소, 오페라 하우스(국가대극원)에서 공연된 세계 최정상 컨템포러리 발레단인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파격의 발레,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 안무의 ‘신데렐라’를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인공 호수위의 거대한 UFO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건축물, 오페라 하우스도 돌아보고 좋아하는 공연도 볼 수 있는 기회. 유리 구두 대신 금가루를 묻힌 맨발의 신데렐라도 좋지만 요정 엄마로 나오는 베르니스 코피에테르의 관능적이면서도 그로테스크한 춤은 역시 만족스러웠다.

샤넬그룹의 디자이너 제롬 카플랭의 의상과 모던한 아트미술관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무대 또한 DVD로 감상할 때보다 극도의 세련미가 더욱 잘 느껴진다. 

   
 
떠나야 자신을 재발견할 수 있다.

고즈넉하고 조용했던 티벳, 라싸에서의 명상과도 같았던 시간과 파격 발레를 감상하면서 추석 휴가 8박 9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여행을 다녀온 후 달라이 라마의 트위터에 팔로우 신청을 했다. 매일 타임라인에 올라오는 그의 글을 읽으며 라싸에서 어느 날 오전에 한가롭게 거닐었던 그의 여름궁전 뤄뿌링카를 떠올린다.

가끔 이메일 주시는 어느 분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어 수첩 한쪽에 적어두고 한 번씩 꺼내어 본다. <여행의 목적은 마음의 우물을 파는 것이다.

여행하는 동안 마음 속엔 감성이라는 물이 차 오른다. 감성의 물이 마음속에 채워지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행복한 인생이 열린다. 길 잃기를 두려워말고 떠나라. 길을 잃은 자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떠나라. 그래야 자신과 세상을 재발견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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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샤넬여사를 패션계의 퀴리부인이라 부르고 싶다.

트위드 재킷, 퀼팅백, 인조 진주 목걸이, NO 5 향수, 블랙 미니 드레스, 샤넬라인 스커트 그리고 앞코의 색상이 다른 투톤 컬러 슈즈 등 샤넬이 패션역사에서 최초로 만들어낸 발명품은 정말 많다. 이런 많은 아이템 중에서도 여성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것은 퀼팅백이다.

특히 1955년 2월에 만들어져 2.55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2.55백과 클래식 백은 사두면 돈이 된다는 말이 있다.

2008년 가을, 환율상승으로 샤넬백 가격이 인상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샤넬 백을 갖는게 평생소원이라고 노래 부르는 후배가 결혼 10주년 선물로 남편으로부터 샤넬 백을 받기로 했다고 자랑하길래 그러면 가격이 오
르기 전에 구입하라는 정보를 주었다.

그녀는 샤넬 2.55백을 구입했고 이틀 뒤 정말 가격이 올랐는지 확인하러 매장에 간 그녀가 두 옥타브는 올라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언니, 언니, 나 돈 벌었어. 무려 80만원이나 오른거 있지? 내가 산 샤넬백 말야...언니 정말 고마워!” 돈 벌게 해줘서 고맙다는 그녀의 전화를 받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돈을 쓰고도 돈을 벌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물건을 우리는 투자가치가 높은 상품이라고 하는데 샤넬백이 바로 그런 물건이다.

샤넬펀드라는 말이 있다. 환율상승이 아니더라도 가격은 절대 내려 가지 않고 세일도 하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만 하는 샤넬 핸드백 가격을 보고 있노라면 주식을 사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나 역시 가끔 샤넬매장을 기웃거리며 내가 구입한 샤넬백의 현재 가격을 확인하곤 하는데 가격이 오른 것을 확인한 순간의 그 희열감이란!

얼마전 주니어 경제월간지 <머니트리>와 조사 전문기관 나이스 R&C가 서울시내 거주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패션 브랜드 중 가장 사고 싶은 명품브랜드 1위로 ‘샤넬’이 꼽혔다.(2010. 머니트리 5월호)

이제는 10대들에게도 샤넬은 꿈이고 로망이다. 물론 이 결과가 10대들 전부의 생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쇼핑 리스트의 가장 꼭짓점에 올려져 있는 백, 지성미 넘치는 퍼스트 레이디로 꼽히는 재클린 케네디 여사도 섹시함과 도도함이 넘치는 축구황제 베컴의 아내 빅토리아 베컴도 그리고 깐깐한 고현정과 장미희, 송혜교도 좋아하는 백.

영화<색계>에 나온 6캐럿 옐로우 다이아몬드만큼이나 탐나서 갖고 싶은 백, 바로 샤넬 핸드백이다.

샤넬백은 1955년 2월에 처음 만들어졌다. 샤넬백이 탄생되기 전까지 여성들의 가방에는 어깨끈이 없어서
가방을 손으로 들어야만 했다. 심플한 것이 가장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샤넬여사가 유일하게 덜어내지 않고 더 한 것이 있다면 핸드백의 어깨끈이다.

샤넬은 가죽 끈과 골드체인을 함께 땋아 만든 체인 어깨끈을 가방에 부착했다. 이렇게 해서 여성 핸드백에 최초로 어깨끈이 부착되었고 2.55백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샤넬 백이 탄생되었다.

직사각형 형태 핸드백의 기준이 되어버린 샤넬백에는 다른 핸드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샤넬백 만의 재밌는 포켓이 3개 있다.

하나는 가방 바깥에 퀼팅으로 덧대어진 스마일 포켓이다. 납작하게 덧대어진 이 포켓은 영수증이나 영화 티켓은 물론이고 주차권 그리고 자동차 열쇠를 꽂아두면 편리하다. 

실제로 샤넬 여사는 뮤지컬이나 각종 공연에서 여성들이 지각했을 때 핸드백을 열어 티켓을 찾느라 허둥대는 것을 보고 이 포켓을 만들었다고 한다. 

두 번째 재밌는 포켓은 비밀 포켓이다. 가방 안쪽을 열면 뚜껑 위쪽에 가로로 된 지퍼 포켓이 있는데 일명 러브레터 포켓이다. 파티에서 남자로부터 러브레터를 받았을 때 넣어두는 비밀스런 포켓이다.

핸드폰으로 모든 러브 메시지를 주고받는 요즘에는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러브레터 포켓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샤넬여사의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발상에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샤넬 여사가 살던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재밌는 포켓은 핸드백 안쪽의 립스틱 포켓이다. 샤넬은 립스틱을 여성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자신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주홍빛 레드 립스틱을 그녀의 백안에 있는 앙증맞은 립스틱 포켓 안에 넣고 다녔다.

이렇게 3가지의 비밀스럽고 재밌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샤넬백은 그 자체만으로 스토리고 추억이다.

프랑스 남서부 오벨뉴 지방 소뮈르의 불우하고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보네르 샤넬(Gabrielle onheur Chanel, 1883~1971), 천성적으로 간결하고 심플한 것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 쉽게 찾아낸 샤넬은 당시 유행했던 아르데코 스타일의 영향을 받았다.

샤넬은 그 당시 아르데코 패션 스타일의 장식을 단순하게 패턴화하였으며 수공과 기계 산업이 혼재된 아르데코 양식을 응용하여 심플한 사각 퀼팅백이나 트위드 재킷, 블랙 미니 드레스 등을 탄생시켰다.

샤넬은 지난 20세기 전반에 걸쳐 세계 패션의 새로운 흐름을 창조해간 멋진 여성으로 모던 클래식의 효시를 만들었다.

샤넬은 럭셔리는 과장하고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천박하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 심플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숨겨진 아름다움을 여러 색깔로 상상할 수 있어서 아름다운 것, 샤넬이 있어서 우리 여성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샤넬만으로도 충분히 우아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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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들어오도록 마음의 항아리 뚜껑을 열어 놓아라!

행복이 들어오도록 마음의 항아리 뚜껑을 열어 놓아라!

무섭게 장대비가 내려도 항아리 뚜껑이 꼭 닫쳐 있으면 물이 한방울도 안들어간다. 이슬비가 살살 내려도 항아리 뚜껑이 열려있으면 항아리에 물이 금새 가득 고인다.

이처럼 우리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자세가 우선 중요하다. 마음자세가 달라지면 행복을 느끼는 우리의 눈도 달라진다.

남과 비교를 하는 순간! 행복은 도망간다!

달라이라마가 한 명언 중에 이런 것이 있다. ‘행복은 모든 욕구의 충족에 있지 않고 마음의 평화에 있다’ 사람들의 밑 없는 독 같은 욕망을 모두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끝없이 채우려고 허망한 욕심을 부리기 보다는 현재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현명하다.

길거리에 버려진 항아리에 살면서 행복을 만끽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유명했던 디오게네스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 학자의 행복을 누리는 삶에 관심이 있던 알렌산더대왕은 디오게네스를 찾아가서 소원이 있으면 말해보라고 했다. 이에 디오게네스는 평온한 표정으로 소원을 말했다.“당신이 지금 나의 햇빛을 가리고 있소! 나 소원은 당신 그림자를 치워주는 것으로 충분하오!”라고 했다.

이 학자의 대답에 놀란 알렌산더대왕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내가 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진정 바랐을 것이다!”라고.....

마음의 평화는 빈 곳을 채우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을 수용하는 데서 오는 것!

‘우리 아내는 수다만 떨 줄 알았지 왜 요리를 못할까?’ 라는 생각보다는 내 아내는 요리는 비롯 잘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로 집안 분위를 유쾌하게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또 ‘우리 애는 놀줄만 알았지 왜 공부를 못할까?’ 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 애는 공부는 잘하지 않지만 건강하고 친구가 많아 다행이다!’라고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우선적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것이 바로 행복의 지름길이다.

이미 자신이 가진 것을 최고로 만든 사람이 되라!

능력이 모자란 사람은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생각을 심하게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채우려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사람이다.

춤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 수학공부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춤과 노래실력을 쑥 키워서 타인과 차별화 시키는 전략이 자신의 능력을 키우는데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우선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이 급선무!

자기 자신의 특장점을 아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언제 가장 행복을 잘 느끼는지에 대해서 잘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은 딱 한번 사는 것. 인생은 생방송이다. NG도 없다. 리허설도 없다. 왕복 티겟도 없다. 딱 한번밖에 못 사는인생. 이왕이면 즐겁게~

자신이 잘하고 또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자신도 즐겁고 즐거운 자신을 대하는 타인도 즐겁게 하는 것이 행복의 선순환 원리이다.

행복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느낄 때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

자신의 마음이 혼자만 들어가는 셔터문이었다면 이제는 행복하게 살기위해 자시의 마음을 누구나 들어오는 회전문으로 빨리 바꿀 필요가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침묵은 금이 아니고 노폐물만 쌓이고 병만 생긴다. 남의 힘든 이야기를 들으면서 같이 눈물 흘려주고 같이 아파해주는 것. 그리고 상대가 잘했을 때는 신바람 나게 칭찬해 주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하게끔 해 주는 것이 바로 더불어 잘 사는 행복의 선순환법칙이다.

행복은 긍정적인 생각에서 탄생 한다!

지금까지 부정적인 생각을 하신 분들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고,지금까지 긍정적인 생각을 하신 분들은 앞으로 초 긍적적으로 생각하시면 더 큰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웃고 살 것인가, 짜증내며 살 것인가. 이것은 모두 우리의 선택이다. 자신의 인생은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이
다. 선택엔 책임이 기본옵션. 초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면 머피의 법칙과 이혼하고 행운을 가져다 주는 샐리의 법칙과 결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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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쟌니 스킥키』는 비극적인 오페라만 작곡했던 풋치니가 쓴 유일한 희극 오페라로 음악과 극의 짜임새가 뛰어나다.

“뭐, 나를 안내하겠다고? 그럴 필요 없어. 이 지역은 내 손바닥 보듯이 빤히 알아. 여기는 내가 살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군. 이건 두오모이고... 흠, 그때보다 겉이 훨씬 화려하군. 그런데 웬 사람들이이렇게도 많담? 가만있자,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먼저 폰테 벡키오로 가봐야겠어.”

노인은 피렌체의 유서 깊은 다리 폰테 벡키오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폰테 벡키오의 모습이 아르노 강 위에 비친다. 다리 위에 선 이 노인은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다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회상에 잠긴다. 그의 눈은 초점이 흐려진다. 그의 옛 추억속에 한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오, 나의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여!”

만약 지금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가 다시 살아난다면 폰테 벡키오로 먼저 달려가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부를지도 모르겠다. 단테는 9세 때, 8세의 베아트리체를 처음 봤는데 베아트리체가 단테의 마음을 평생 동안 사로잡을 줄이야. 그후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18 살이 되었을 때 이 다리부근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두 사람은 이승에서 서로 결합할 운명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부유한 바르디 가문에 시집갔다가 1290년 6월 스물 네 살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니... 단테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자식도 두고 있었지만 베아트리체를 평생토록 잊지 못했다.

단테의 잊지 못할 여인 베아트리체

폰테 벡키오(Ponte Vecchio)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으로, 이름 그대로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이것을 ‘베키오 다리’라고 번역하는 것은 아주 우스꽝스럽다.

이 다리 위에는 보석상들이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데, 결혼반지를 고르는 젊은 연인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다리 한 가운데에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출신의 조각가이자 금세공 예술가로 이름을 떨쳤던 벤베누토 첼리니(Benvenuto Cellini)의 흉상이 마치 이 다리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세워져 있다.

그가 말년에쓴 자서전을 보면 '피렌체'라는 도시 이름은 기원전 1세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붙인 것이라고 한다.로마군이 주둔하고 있던 아르노 강변에 꽃이 만발했기 때문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이곳을 '꽃피는 곳'이란 뜻으로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피렌체'란 도시명은 여기에서 유래하는데, 발음은 ‘피렌쩨’에 가깝다. 한편 '플로렌티아'는 프랑스어와 영어로는 Florence로 표기되며 각각 '플로랑스', '플로렌스'라고 발음된다.

피렌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 이후 천년 이상이 지난 다음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그러니까 1115년 이래로 도시국가의 면모를 갖추면서 세력을 확장하여 권력과 문화의 절정을 위한 바탕을 구축해갔던 것이다. 그런데 권력이 비대 지고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면 내분이 생기기 쉬운 법.

피렌체는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피(Guelfi)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리니(Ghibellini)파가 분열하였고, 기선을 잡은 구엘피파는 다시 백색파와 흑색파로 갈려 서로 싸웠다. 기벨리니파에 속했던 단테는 고향 피렌체로부터 추방되었다. 그후 오랜 유랑 생활 끝에 이탈리아 동북부 도시 라벤나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숨을 거두었는데, 죽기 전 베아트리체를 잊지 못해 방대한 서사시를 쓰고 이것을 『희곡』(Commedia)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단테는 이것을 라틴어로 쓴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기 쉽게 피렌체 지방의 방언으로 썼다. 이를 계기로 피렌체 지방의 언어는 표준 이탈리아어로 서서히 굳어지게 되었다.

『희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구성되어있다. 단테는 그의 작품 속에서 고대로마의 문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1300년 4월 부활절 이전 목요일 밤부터 부활절 다음 목요일 자정까지 저승을 여행하게 되는데, 그의 여정은 지옥으로부터 시작하여 연옥을 거쳐 베아트리체가 있는 천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인간의 이성(理性)을 상징하고 베아트리체와 단테와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간의 관계를 상징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후세의 복캇치오는 이 작품을 신성하다고 해서 <La Divina Commedia>, 즉 '신곡(神曲)'이라고 불렀고, 1555년 베네치아에서 처음으로 이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한편 단테는 반대파의 정치가, 성직자, 또 악명 높은 범죄자들을 모두 지옥편에 던져 넣어버렸는데, 그 중에는 쟌니 스킥키(Gianni Schicchi)라는 이름도 잠깐 등장한다. 쟌니 스킥키는 남의 유산을 교묘하게 모두 가로챈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그의 사기행각에 대한 이야기는 후세에 각색되어 풋치니에 의해 오페라화 되었다.


희대의 사기꾼 쟌니 스킥키

오페라 『쟌니 스킥키』는 비극적인 오페라만 작곡했던 풋치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쓴 희극 오페라인데, 그 배경은1299년의 피렌체가 된다. 그리니까 중세를 마감하고 곧 꽃필 르네상스 시대를 기다리는 시점이다. 이 오페라는 풋치니의 작품 중에서 음악과 극의 짜임새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는 단연 감미로운 <오 사랑하는 아버지> (O, mio babbino caro)이다.

그런데 내용을 모르고 이 아리아를 부르는 소프라노들 중에는 으레 아버지를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감정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탈리아어 가사 내용을 보면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다.

그럼 무슨 내용일까?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린 딸이 돈이 없어 사랑하는 그이와 결혼을 못하게 되면 폰테 벡키오에 가서 아르노 강에 투신하겠으니,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아버지를 은근히 위협하는 내용이다. 딸이 애절하고도 감미로운 선율로 노래하자 섬뜩해진 아버지 쟌니 스킥키는 마침내 교묘한 사기극을 꾸미게 되는데....

오페라 『쟌니 스킥키』는 짧고 등장인물도 많지 않기 때문에 공연하기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리 만만한 작품이 아니다. 이 오페라는 서로 다른 등장인물들을 어떻게 독특하게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연출가의 뛰어난 역량과 감각이 요구된다. 그뿐 아니다. 피렌체 역사와 풍습에 대한 충분한 지식도 당연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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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주의 건축이란 일찍이 70년대 초 런던의 AA스쿨, 뉴욕의 쿠퍼유니온을 중심으로 한 일련의 건축가 집단에서 나타났던 건축경향으로, 80년대 들어서 새롭게 등장한 해체 이론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기반을 쌓기 시작했다. 해체주의 건축의 이론적 배경은 프랑스 철학가 데리다(Jacques Derrida)의 해체이론이 대표적인데 사물의 지배적 중심사고를 부정하면서 획일적 대립을 해체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철학으로 이해된다.

국제주의 양식으로 획일화 되어버린 근대건축의 순수성과 완전성을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근대건축에 숨어있는 가능성을 찾아내어 새로운 공간과 형태를 제시하려 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 산타모니카에 있는 베니스는 90년대 이후 산타모니카파(SantaMonica school)로 알려진 해체주의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건물로 유명한 도시이다.

도시 곳곳에 있는 새롭고 신기한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이곳에는 벽과 지붕이 모호하고 벽과 벽의 경계가 애매하며 건물과 바닥이 불분명한 집들이 많다.

다양한 면들이 복잡하게 중첩된 건물 뿐 아니라 건물의 선이 비틀어지고 찌그러져 그 속의 공간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 건물도 있다. 벽, 지붕, 바닥, 기둥이란 전통적 건축요소가 해체된 듯하다.

감각적이고 재미있기까지 한 건물들은 베니스에서 만날 수 있는 해체주의 건축의 한 단면이다. 해체주의 건축은 개념적(Concept)이기보다는 지각(Perception)에 기초한 건축이다.합리적 기능주의로 대변되는 근대 건축의 용도와 기능의 문제, 중력과 구조의 과제가 의심되며 재해석된다.

거주성이라 하는 건축의 근본적 개념에서 인간의 지각이 공간의 주체 관계로 재구성된다. 대상화된 인간의 기능이 공간과 형태에서 개방된다. 결과적으로 공간과 건물의 윤곽을 암시하는 기존의 격자나 틀(Frame)이 매우 느슨해지며 새로운 형태의 공간이 만들어 진다. 형태와 조직이 스스로 개방되며 비대칭과 운동성이란 다이내믹을 만들어낸다.

해체주의 건축의 형태적 특징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해체주의는 형태적 변환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구조의 변환(전복)에 의해 결과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근대건축의 기하학적 공간은 추상적 실체로어디에서나 속성이 같은 공리적인 유클리드 공간이었으며 2, 3차원의 평평한 면 위에서 정식화된 것이었다.

반면 우리가 사는 재현적 공간은 비유클리드적이어서 구위에 그려진 삼각형처럼 내각의 합이 반드시 180˚가 아닐 수 있다. 때로는 넘기도 하고 모자라기도 하며 완벽한 삼각형이 아니라 우리의 지각 속에 유영하는 어떤 한 삼각형을 재현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다양한 형태의 공간과 동적인 외관이 형성되는 근거이다.

원근법에 의한 형태의 왜곡이 해체주의 건축 형태에선 덜 감지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산타모니카스쿨의 아버지로 대변되는 프랭크 게리(Frank Ghery)는 로스 엔젤리스의 디즈니홀(DisneyHall)과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Guggenheim museum)으로 우리에겐 친숙한 건축가이다. 물결치듯 넘실대는 외벽과 지붕선, 예상을 뛰어 넘는 형태와 공간은 기존의 논리와 규칙, 그리고 질서를 초월하여 새로운 개념의 건축을 만들고 있다.

얼핏 공간과 형태가 무한히 소비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기존의 건축이 갖고 있는 일상성을 해체하며 해체된 도시의 격자와 틀 속에서 새로운 상징과 영역을 창조한다. 한 예로 티타늄판을 주재료로 사용
하는 그의 외관은 시간에 따라 다양한 표정으로 주변과 매우 동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움직임이 있고 움직이게 하며 주변에 흡수되지 않고 주도적으로 도시맥락(Context)를 엮어나간다. 그의 창조적 디자인 개념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연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연속되는 공간의 시퀀스(spatialsequence)에서 발견되는 형태와 그 형태의 투시도적 재현(Perspective theory)이 아크로폴리스 공간 연구에서 습득되었다. 초기 작품인 미국LA의 로욜라법과대학(Loyola Law School)에선 그의 투시도적 형태 구현이 잘 나타나 있는데, 거리에서 캠퍼스를 들어서며 만나게 되는 건물의 형태와 공간, 그리고 캠퍼스 내의 다른 공간에서 지각되는 형태의 극적 요소들 - 계단탑, 종루, 그리고 헛 기둥들 -에선 건축이 고양하는 장소와 영역에 내린 그의 특별한 해석에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이후 산타모니카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 건축에서 시도된 형태적 아이콘과 재료에 대한실험은 그의 건축을 조각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한다. 건축가뿐만 아니라 조각가를 포함한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과 교류한 결과일 수도 있으나, 이는 건축디자인이 건축적 질서에 얽매어 있는 기존의 사고 형식을 해체하여 자유로운 형태를 추구하려 했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건축이 만들어가는 극적인 공간과 장면 연출, 자유로운 형태를 다분히 소비적 건축으로 볼 수 없는 것은 도시의 연속체로 형태와 공간을 엮어나가는 그의 철학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은 후기 해체주의 건축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이러한 해체주의 건축가로 귀속시키는 것을 만족스러워 하지 않았다. 그것은 건축을 배움으로써 그의 건축이 완성되었기보다는 그의 오랜 생활 습관과 그의 순수예술에 대한 지향성에서 건축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게리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유태교 집안의 종교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는데 특히,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가게에서 톱, 망치, 울타리, 쇠사슬 등을 자주 접하면서 '재료의 본성'에 대한 큰 영향을 받게 된다. 그것이 후에 고유의 '연결 사슬망'이나 주름 접힌 메탈 패널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컴퓨터를 통한 디자인 기법과 건설기술 또한 게리가 설계한 건물을 이해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단순한 형태의 진보가 아니라 건축설계와 건설 기술의 발전까지 있게 한 그의 디자인 과정은 모델 작업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구조적 문제해결, 디테일 등 모든 작업들이 모델작업에 의해 판단되고 최종결과물 또한 모델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의 물고기 형태를 건물 외관에 도입한 빌바오의 구겐하임 뮤지엄도 CATIA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건축디자인 해석에 의해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그가 설계한 건물은 시간과 도시에 개방된 형태를 즐기게 만든다. 정오의 찬란한 햇빛 속에서, 저녁 노을 속에서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 묘한 왜곡이 있다. 대상을 단순화한 듯하면서도 평면층을 이용하여 장면들을 배경에서부터 전경으로 구성하면서 빛의 변화를 탐닉하게 만든다.

마치 피카소(Pablo Picasso)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에서 느껴지는 시각적 동시성과 다층적 기하학이 건축의 형태를 빌어 우리에게 스펙타클(Spectacle)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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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분야는 자연적인 현상을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방법으로 표현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표현 행위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기 마련이다. 특히 시각적인 예술 분야는 3차원(3D) 세계를 2차원(2D)인 평면에 표현하다보니 제대로 표현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술에서 사용한 가장 흔한 방법이 바로 원근법이다. 평면 위에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에 입체감을 주기 위해 가까운 물체는 크게, 먼 곳에 있는 물체는 작게 표현하는 방법 등을 사용하는 것이 바로 원근법이다.

물론 원근법 외에도 입체파는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여 화폭에 표현하기도 하고, 유화의 경우에는 덧칠을 여러 번하여 입체감을 주기도 한다. 요즘에는 나무껍질, 조개 등을 직접 그림 위에 붙여서 질감을 주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영화의 경우에도 화면을 입체감 있게 표현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그게 바로 3D다. 3D의 기술적인 원리를 자세히 설명하려면 지루할 수 있기 때문에 간단한 원리만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3D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입체감을 느끼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사람이 원근감을 느끼는 원리는 바로 두 개의 눈이 한 지점을 보는 각도가 다르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즉 가까운 사물을 볼 때는 왼쪽과 오른쪽 눈이 보는 각도가 크고, 멀리 있는 물체를 볼 때는 그 각도 크기가 작아진다. 그러니까 사물이 멀리 있는지 가까이 있는지 느끼는 것은 우리 눈이 물체를 보는 각도를 뇌가 해석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화의 화면에서 입체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도 비슷한 원리를 이용한다. 즉 화면에 왼쪽 눈이 볼 수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이어서 오른쪽 눈이 볼 수 있는 장면을 번갈아 보여주면 우리 뇌는 두 눈에서 들어온 정보를 분석해서 입체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3D 영화를 볼 때 특수 안경을 쓰는 이유는 바로 왼 쪽 눈과 오른쪽 눈에 원하는 화면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특수 안경은 여러 가지 방법이 이용되는데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좌우에 각각 편광렌즈를 넣어서 특정한 장면만 선택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영화를 촬영할 때도 왼쪽 눈에 보이는 장면을 찍는 카메라와 오른쪽 눈에 보이는 장면을 찍는 카메라 두 대로 동시에 촬영을 해서 편집을 할 때는 번갈아가면서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보이는 장면을 넣어야 한다. 이런 번잡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3D 영화를 만들 때는 비용이 일반 영화를 만들 때보다 훨씬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3D 영화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 외 에도 눈에 피로감을 주기 때문에 오래 볼 수 없다는 문제점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입체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좌우 시각차를 눈조리개의 열림과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느껴야 한다. 그런데 3D 영화에서는 눈은 가만히 있고, 화면이 변하면서 그런 효과를 주기 때문에 부자연스럽
기 때문이다.

요즘 3D TV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바로 이런 눈의 피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이다. 일반 사람들은 피로를 느끼는 것에 그치지만 민감한 사람들은 구토를 느낄 정도로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이다.

얘기가 나온 김에 3D TV의 원리는 어떤 것인가? 3D TV는 특수 안경을 쓰지 않고 보도록 하는 게 가장 큰 관건이다. 3D TV의 원리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즘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화면을 구성하는 각 발광소자의 각도를 조절해서 어느 한쪽 눈으로만 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즉 화면을 구성하는 발광소자를 골고루 나누어서 어떤 발광소자들은 왼쪽 눈을 향하도록 각도를 조절하고, 나머지 발광소자들은 오른쪽 눈에만 보이도록 각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물론 왼쪽 눈에 보이는 장면은 왼쪽 눈에만 보이도록 조정된 발광소자로만 보내고, 오른쪽 눈도 마찬가지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3D TV는 과거의 브라운관 TV로는 구현될 수 없고, 디지털 TV에서만 구현될 수 있는 기술이다.

최근에는 3D 영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관람자가 실제로 느낄 수 있는 4D 영화가 구현되고 있다. 예를 들면 배를 타고 가다가 폭포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나오면 의자가 앞으로 기울면서 마치 자신이 폭포에서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또 꽃밭을 거닐면 의자 앞의 장치에서 꽃향기가 퍼져 나와서 실제로 꽃밭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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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15일 저녁 8시 예술의전 당 콘서트홀, 아직 객석은 드문드문 빈자 리가 많이 눈에 띈다. 잠시 후 객석의 조 명이 어두워지고 무대 중앙에 놓인 슈타 인웨이 피아노를 중심으로 스테이지의 조명이 밝아진다.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인 헝가리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렌드바이가 바이올린과 악보를 들고 무 대로 들어온다. 뒤이어 러시아 피아니스 트 알렉산더 스비아트킨이 뒤를 따른다. 야성적인 얼굴과 긴머리, 약간 몸집이 있어 보이는 렌드바이가 무대전면에 설 치된 마이크 앞에 다가서서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라고 인사를 한다. 일순간 약간은 서먹하고 냉랭한 공연장 분위기에 따뜻함이 밀려온다.

첫 번째 연주곡을 영국식 발음의 영어로 Johannes Brahms의 <바이올린 소나타 2번>을 연 주하겠다고 소개한다. 드디어 렌드바이의 1693년산 스트라 디바리우스 바이올린에서 감미로운 선율 이 흘러 나와 콘서트홀의 빈 공간을 채우 기 시작한다. 바이올린 소리에서 그의 외 모와 달리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브람스가 스위스 베른근처 툰(Thun) 호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작곡한 이 곡은 렌드바이의 자유로움이 배어나는 연주로 편안함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준다. 3악장이 끝날 때까지 숨을 죽이며 감상하는 관객들이 연주회의 품격을 높 여준다. 그런 모습이 아름답다.

   
 
두 번째곡인 Cesar Auguste Frank 의 <바이올린 소타나 A장조>는 사랑의 신비로움과 격정, 그리고 속삭임을 노래 했는데 일부 관객들이 매 악장마다 박수 를 치는 바람에 분위기가 조금은 어수선 했지만 렌드바이의 여유로움과 차분함이 연주 분위기를 잘 이어갔다.

전반부는 집시음악의 전통을 이어받은 렌드바이가 정통 클래식음악을 유연하면 서도 부드럽고 강한 사운드로 감동을 주 었는데 클래식과 집시음악이 조화를 이 룬 무대였다. 휴식이 끝나고 Sarasate의 <지고이 네르바이젠>으로 후반부가 시작되었다. 어느덧 관객들은 렌드바이의 바이올 린 연주에 심취해 있다.

‘집시의 노래’라 는 이 곡은 매우 뛰어난 기교를 요하는 데 렌드바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연 주였다. 귀에 들리는 현의 소리는 부드 럽고 편안했지만 활의 움직임과 손놀림 은 매우 빠르게 움직였고 현란했다.

뒤를 이은 Maurice의 <치간느>와 Monti 의 <챠르다수>, Kreisler의 <아름다운 로즈마린>, Carlos Gardel의 , Piazzolla의 <리베르탱고>, Paganini의 <카프리스 24번>, Brahms 의 <헝가리무곡 5번>, Grigoras Dinicu 의 <호라 스타카토>는 곡이 연주되면서 점점 감동이 더해졌다.

렌드바이의 매우 빠른 데타쉐, 피치카토와 하모닉스, 살타 토와 스타카토주법이 돋보였는데, 화려 하고 현란한 테크닉과 손의 움직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으며 주옥같은 집시음 악을 맘껏 느낄 수 있었던 무대였다. 그 의 연주를 통해 카타르시tm를 느낄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소리의 연금 술사’ ‘소리의 마술사’라는 표현이 어울리 는 렌드바이의 바이올린 연주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연주한 러시아민요 <모스 크바의 밤>은 함께 연주한 러시아 피아 니스트 알렉산더 스비아트킨을 위한 배 려가 돋보인 무대였고 애틋한 사랑이 절 절이 뭍어나는 아름다운 곡이었다.

‘집시가문의 젊은 거장’으로 불리는 렌 드바이는 철저한 클래식음악 교육을 바 탕으로 자유롭고 생명력이 넘치는 집시 음악을 계승한 위대한 음악인이다. 렌드 바이의 다음 공연이 기다려지는 것은 한 결같은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오늘따라 유난히 시원하게 느껴지는 예 술의전당의 밤 공기를 마시며 따뜻한 커 피 생각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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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누구는 거지로 태어나고, 누구는 왕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시인으로 태어난다. 누구는 부자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뱅이로 태어난다. 이렇게 출발부터 다르다면 어떻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까?

그림에는 무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인간 군상의 이야
기가 갖가지 이미지로 펼쳐진다. 그 파노라마 가운데 리더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삶인지 그들이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명화는 리더들을 어떻게 표현
할까? 그 일단을 살펴보자.

 

위험에 앞장서던 리더 워싱턴

리더십의 가장 핵심적인 덕목은 헌신이라고 한다. 리더십은 본질적으로 지위가 아니라 헌신에서 나온다.
헌신적인 리더는 구성원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강한 리더십을 갖게 된다. 미국화가 이매뉴얼 로이체가
그린 워싱턴도 그런 리더였다.

그림은 동 터오는 새벽, 워싱턴이 도강 작전을 감행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델라웨어 강을 건너 벌인 트렌
턴 전투는 미국 독립투쟁사에 길이 남을 영웅적인 전투다. 1776년 독립 선언 뒤 미국 혁명군은 영국군의 압박에 계속 맥을 못 추었다. 정예부대와 거리가 먼 혁명군은 도저히 영국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연전연패하다 마침내 델라웨어 강 건너로 내몰리고 말았다.

하지만 사기를 잃지 않고 전의를 불태우던 혁명군은 워싱턴 장군의 지휘 아래 1776년 12월 25일 새벽 델라웨어 강을 건넜다. 그리고 뉴저지 트렌턴에 주둔해 있던 용병 부대를 급습해 900여 명을 포로로 잡고 트렌턴을 장악했다. 이 승전보로 미국은 불가능하기만해 보였던 혁명의 승리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다질 수 있었다.

화가는 기념비처럼 서서 강 건너를 바라보는 워싱턴을 그렸다. 앞장서서 위험을 감수하는 모습을 그린 것인
데, 워싱턴은 진짜 그처럼 헌신적인 지휘관이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한 신사가 말을 타고 가다가 병사들이 큰 나무를 나르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상사가 구령
을 붙이고 있었지만, 병사들은 나무를 제대로 나르지 못했다. 힘에 부쳤던 것이다. 신사가 상사에게 물었다.

“자네는 왜 같이 나무를 나르지 않는가?” 상사가 대답했다. “나는 졸병이 아니라 상삽니다. 지휘하는 게 내
일이지요.” 그러자 신사는 말에서 내려 병사들과 함께 나무를 날랐다. 힘써 나른 뒤 지친 몸으로 말에 올라
탄 신사는 상사에게 말했다. “이런 일이 또 있거든 주저 말고 총사령관을 부르게.” 그때서야 상사는 그가 워
싱턴 장군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워싱턴은 이처럼 진정한 리더란 헌신하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이라는 것
을 늘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당시 워싱턴의 군대를 본 한 프랑스 장교는 “헐벗고 보상도 없다시피 한데다가 소년에서부터 노인, 흑인 등
으로 구성된 군대가 그토록 용감하게 행군하고 싸운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기록했다. 아이를 무등 태워 보이지 않던 구경거리를 보여주는 아버지처럼 헌신적인 리더는 이렇듯 조직원들의 영혼을 고무해 새로운 비전을 갖게 하는 존재다.

   
 

 희생의 결단을 내린 레오니다스

헌신적인 리더가 얼마나 구성원들의 영혼을 강렬하게 고무하는지는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테르
모필라이의 레오니다스>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림을 보면, 용맹한 군인들의 벌거벗은 몸이 마치 단단한 암석들이 어우러진 것 같다. 지금 다가오는 적을 맞아 용감히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인물 가운데 제일 눈에 띄는 것은 가운데 좌정한 레오니다스다.

레오니다스는 스파르타의 왕으로서, 지금 눈앞에 다가온 전쟁(페르시아 전쟁)에서 불과 3백 명의 장갑 보병을 이끌고 수십만 명에 이르는 막강한 페르시아 대군과 맞서 싸운 사람이다. 그와 그의 군대는 최후의 일인까지 적의 진격로인 테르모필라이를 막다가 전사했다. 그들은 모두 죽었지만 결국 전쟁의 승리는 그리스에게 돌아갔다.

레오니다스는 그 승리와 희생의 위대한 상징으로 이처럼 역사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

레오니다스는 진정으로 헌신적인 지도자였다. 당시 엄청나게 많은 페르시아 육군에 맞서 육상에서 싸우는 것은 결과가 뻔한 일이었다. 결국 보급로를 놓고 해전에서 승부를 갈라야 하는데, 이는 해군력이 뛰어난 아테네가 맡아야 할 일이었다.

그렇다면 육상 전투에 뛰어난 스파르타 군이 할 일은 어떻게 해서든 아테네가 해상전투에 제대로 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었다. 최후의 일인까지 끝까지 저항하다 괴멸된다면 일각이라도 더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레오니다스는 이 전투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기에 자기와 함께 참전할 용사들을 모두 아들이 있는 사람으로 뽑았다. 한마디로 죽어도 괜찮을 사람만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사느냐보다 더 중요한 게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이라고 한다. 레오니다스는 명분과 대의가 확실하자 주저 없이 죽음을 택했다. 지도자가 그렇게 자기희생의 과감한 결단을 내리자 조직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올라갔다.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그와 함께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지도자가 외롭다는 것은 언제나 이런 ‘사즉생(死卽生)’의 칼을 가슴에 품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가 이렇게 희생해서 그리스 문명을 지키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서양문명은 전혀 다른 문명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불공평한 현실도 긍정으로 보는 힘

영국 화가 번 존스의 <운명의 수레바퀴>는 리더의 역할에 대해 생각헤 보게 하는 작품이다. 왼편에 한 여인이 서 있고, 그녀의 오른편에 커다란 수레바퀴가 보인다.

바퀴 바닥에는 사람들이 붙어 있는데, 모두 세 남자가 보인다. 맨 위에 있는 사람은 노예고, 가운데 사람이 왕, 맨 아래 있는 사람이 시인이다. 화가는 이 그림과 관련해 한 지인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내 '운명의 수레바퀴'는 진실한 이미지라네. 우리의 차례가 오면, 우리는 그렇게 바퀴에 들러붙고 말지." 살다 보면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누구는 거지로 태어나고, 누구는 왕으로 태어나고, 누구는 시인으로 태어난다. 누구는 부자로 태어나고 누구는 가난뱅이로 태어난다. 이렇게 출발부터 다르다면 어떻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할까?

과연 운명이라는 게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의 성격이나 기질, 재능을 알면 그 사람이 살아갈 삶의 궤적을 어느 정도는 그려 볼 수 있다. 운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쉽게 바꾸지 못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 것이다.

여론 조사기관인 갤럽에서 리더십과 직장 관리를 연구해온 마커스 버킹엄과 커트 코프만은 전 세계의 관리자 수만 명을 상대로 인터뷰한 결과 유능한 관리자들이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은 신념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유능한 관리자들이 타고난 것, 그래서 바꿀 수 없는 것, 보기에 따라서는 운명적으로 불공평해 보이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으므로 부정적으로 보이는 그 배면에 긍정적인 것이 반드시 있으며 그걸 잘 살리면 개인과 조직에 모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 비춰 유능한 리더는 부하들에게 없는 것을 갖춰주려 애쓰는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진정으로 유능한 리더다. 버킹엄과 코프만에 따르면, 그런 관리자는 일종의 촉매 같은 존재라고 한다. 우리에게 운명이 있다면, 우리의 성격이나 기질, 재능은 날 때부터 이미 상당부분 정해져 있다는 사실과, 그걸 멋지게 발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이런 촉매를 만나느냐 못 만나느냐 하는 부분일 것이다.

이런 훌륭한 리더를 만나는 것, 또 이런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 모든 사람의 소망이 아닐 수 없다. 그림을 보며 우리안의 그런 잠재력을 다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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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과 합창의 발성법에 차이점이 있는 지를 알고 싶다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합창을 위한 발성법이 따로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합창을 위한 발성법은 따로 없다는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오케스트라를 가지고 설명을 하겠다.

오케스트라에는 여러 종류의 현악기와 목관악기,금관악기, 그리고 타악기가 있다. 바이올린의 경우 오케스트라에서 합주를 하든지 혼자서 솔로로 연주를 하든지 똑같은 악기를 가지고 같은 주법으로 연주를 한다. 노래에 사용되는 호흡을 똑같이 사용하는 관악기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말해서 악기를 다루는 방법이 솔로일 때와 합주일 때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각각의 음색이 다른 악기들이 모여서 조화를 이룬다. 이 때에 중요한 것은 각악기군이 소리를 얼마나 균형(Balance)있게 만드느냐 하는것 이다. 오케스트라에서 각 악기마다 고유한 음색이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조화(Harmony)를 이루는 요소는 바로 ‘音’이다.

통상적으로 오케스트라는 연주 전에 튜닝(Tuning)을 하는데 오보에의 ‘A’음을 기준으로 모든 악기들이 정확한 높이의 음을 맞출 때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사운드가 만들어 질 수 있다.

합창의 경우에는 튜닝(음을 맞추는 조율작업)이 없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각 파트가 정확한 높이의 음을 가지고 연주를 한다면 아름다운 합창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합창에서 제창(Unison)이 어려운 이유는 똑같은 멜로디를 각 파트가 하나의 목소리처럼 노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정확한 음을 가지고 노래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화음인 경우에는 음높이가 조금 달라도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제창인 경우에는 음높이가 맞지 않을 경우 쉽게 발견된다. 합창을 하는 경우에 개개인의 소리가 크거나 작거나, 거칠거나 윤기가 있거나 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정확한 음높이를 가지고 노래를 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합창을 할 때에 독창을 하는 식으로 노래를 하면 안 된다고 얘기를 한다. 그것은 합창에서 소리가 튀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인데 그것은 독창을 하는 발성법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부정확한 음높이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 성악전공자들 중에서 소리를 누르거나 힘으로 밀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에 음높이가 정확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난다. 이런 현상은 합창뿐만이 아니고 독창에서도 문제가 된다.

합창소리가 달라져야 한다. 합창은 일반적으로 아마추어들이 모여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비전공자인 아마추어로 구성된 합창단이 많이 있다. 교회의 찬양대(성가대)도 대부분 비전공자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반면에 전공을 한 사람들로 구성된 합창단도 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의 수많은 오페라극장에 소속되어있는 합창단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힘 있고 다이내믹한 소리가 느껴지면서도 때론 극도로 절제되고 섬세한 피아니시모의 가슴 뭉클한 사운드는 그 음악적 감동을 말로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성악전공자들로 구성된 합창단이 아닌 비전공자들로 구성된 합창단이라 할지라도 지속적인 발성훈련을 통해서 전공자들처럼 할 수는 없어도 비슷한 정도가 되도록 지도하고 육성해야 한다. 처음부터 전공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를 보면 성악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이 있고 이런 전공자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합창단이 많이 있는데 전공자들에게 비전공자들처럼 노래하도록 지도하는 지휘자들이 있다는 것은 큰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마치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초등교육만을 받은사람처럼 행동하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교회에서의 찬양대(성가대)가 대부분 비전공자들로 구성되어있는 까닭에 아마추어수준을 벗어나기는 힘들겠지만 올바른 발성훈련과 지휘자의 노력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전공자 수준의 찬양대로 발전할 수 있다. 많은 합창지휘자들 중에는 아직도 성악가들처럼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나 소리를 못 내게 하는 지휘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의 가성처럼 노래를 부르게 하고 개개인의 소리의 빛깔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휘자도 많이 있다. 이제는 합창의 소리가 달라져야하고 그 개념이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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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과학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만약 종이의 발명이 없었다면 그림의 표현 범위는 아주 좁았을 겁니다.

아마도 원시인들처럼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동물의 껍질에 그림을 그렸겠죠. 요즘은 종이 외에도 (컴퓨터) 모니터도 미술의 한 표현 매개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 앞으로는 그림도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시대가 오겠죠. 더구나 모니터가 종이처럼 접기도 하고 둘둘 말 수도 있게 된다고 하니 그림을 모니터에 그려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백남준 씨가 비디오를 이용한 비디오 아트를 창안해서 유명해졌던 것처럼 모니터를 이용한 모니터 아트 시대를 만들어 내면 유명해 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림에 들어 있는 가장 과학적인 면은 아마도 물감에 있을 겁니다. 그림에 색깔을 넣으려면 여러 색상의 물감이 필요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물감의 재료로는 나뭇잎, 흙 등 자연에서 취할 수 있는 재료들이 있겠죠. 

   
 
어떤 물감의 재료들은 자연에서 채취할 때 액체 상태로 되어 있어서 그대로 사용할 수가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식물의 즙을 내서 물감으로 사용하면 별도의 처리가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물감 재료들은 가루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어떤 특정 용액(액체)에 녹여야 합니다. 그 어떤 특정 용액이 물이면 수채화 물감이 되고, 기름 성분을 사용하면 유(채)화 물감이 되는 겁니다. 

기름을사용하는 유화기법의 특징은 색조나 색의 농담(濃淡)이 쉽게 얻어지고 ‘선적(線的)’ 표현도 가능하며 광택, 무광택 등의 불효과 또는 투명, 반투명한 묘법(描法) 등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또한 두껍게 바르거나 엷게 칠하거나하여 재질감(마티에르)의 표현이 가능하고 또한 제작 중의 색과 마른 뒤의 색 사이에 변화가 없는 점 등의 장점이 있습니다.

유화의 가장 큰 단점은 물감이 마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덧칠하기 위해서는 몇 달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오늘날의 유화 물감이 탄생하기까지는 여러 사람들이 다루기 쉬우면서도 건조 속도가 빠른 기름 종류를 찾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유화 물감이 잘 혼합되고 건조 속도도 빠르게 하기 위해 석유계 화합물인 유기용제를 쓴다는 점입니다. 유기용제는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암유발의 원인이 됩니다. 물론 요즘에는 상대적으로 독성이 덜한 유기용제들을 사용하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몸에 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물감의 원료 중에 중금속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중금속은 밝은 색깔의 물감 원료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의 유명한 화가인 루벤스나 르노와르도 중금속 중독으로 고통 받았다는 연구가 있는데, 이들이 다른 화가들보다 특히 밝은 계통의 색깔을 선호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어두운 계열의 색소에는 상대적으로 몸에 덜 해로운 철이나 탄소 등이 들어있는 데 비해 밝은 색에는 수은, 카드뮴, 크롬, 납, 비소, 안티몬, 망간 등 몸에 해로운 중금속이 다량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망간은 푸른색, 갈색, 보라색을 내는데 사용되고, 납은 노란색과 흰색 계통의 색소에 많이 쓰입니다.

화가들이 물감에 들어있는 중금속에 중독되는 경로는 다양합니다. 우선 대부분 화가들의 작업실은 통풍이 안 되기 때문에 풀어놓은 물감에서 나오는 휘발성 유기 용제와 중금속을 호흡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구나 숙식을 화실에서 하는 화가들의 경우에 문제가 더욱 심각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릴 때 붓으로 그린다고는 하지만 손에 묻히는 경우가 생기고, 그에 따라 입으로 중금속이 들어갈 기회도 많아집니다.

더욱 큰 문제는 화가들이 이런 물감에 의한 중금속 중독의 위험성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이럴 때는 아는 게 병이 아니라, 아는게 약인데 말입니다.

 

   
 
■ 김송호(공학박사 /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 입학사정관 / 저술가 / 강연가 / 헤드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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